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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빌 로 : 헨리 풀 (HENRY POOLE & CO)

Photography: Jonathan Daniel Pryce  


새롭게 문을 연 헨리 풀의 서고에서 최근에 파란색 가죽으로 다시 바운딩한 방대한 고객 기록부를 하나 뽑아 들고서, 빛이 바랜 페이지들을 넘겨다 봅니다. 알만한 이름들이 나옵니다 – 몇 개의 왕궁을 채울 만큼 많은 왕과 차르, 백작, 황제와 왕족들을 포함해, 찰스 디킨스, 리빙스톤 박사와 버팔로 빌까지. 나폴레옹 3세,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왕, 디스라엘리 총리,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에드워드 7세 – 모두 새빌 로에서 가장 오래된 수트 숍인 이 곳을 방문하여, 대중 앞에 나설 때 마다 그들의 권력과 품위, 권위를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찾았습니다.

Henry Poole & Co. managing director Simon Cundey.

그들을 이 곳으로 이끈 것은 헨리 풀의 핵심적인 제작 철학이었던 바로 강박에 가까웠던 대칭성과 균형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제임스 풀과 그의 아내 메리가 그들의 이름을 따서, 워털루 전쟁에 참전한 장교의 의복을 만들 숍을 1806년에 브룬스윅 스퀘어에 설립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업주 가문의 7대손으로,  (1876년 전대 소유주의 사망이후, 사촌이었던 사무엘 컨디(Samuel Cundey)가 가게를 이었음) 경영본부장인 사이먼 컨디(Simon Cundey)는 “풀은 신체의 균형에 많은 관심이 있었죠.” 라고 말합니다.

“남성 수트의 전통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헨리 풀의 유명한 디너 만찬과 관련한 일화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빌 로에서 가장 오래된 수트 숍의 성공은 2세기에 걸친 비스포크 재단의 전통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는 보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옷을 만들어서 체형 면에서 사소한 문제가 있는 신사들의 결점을 보정해 주고자 했죠. 어깨선, 견갑골, 상하체 길이의 비율 – 이 모든 신체 비율 뿐만 아니라, 수학적인 면까지 고려했죠. 바닥에서 목 뒤까지의 길이를 알면, 코트 길이의 절반을 알 수 있는데, 정통 수트에 이 비율을 적용하죠. 어떤 사람들은 상체가 더 긴 편인데, 코트를 약간 짧게 만들어서 다리를 더 길어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높은 팔의 위치, 짤록한 허리도 헨리 풀 수트 특유의 힘을 느끼게 해줍니다.

오늘날까지, 지난 2세기 동안 헨리 풀에서 고수한 재단 철학에 대한 집착은, 새빌 로 15번지에서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846년 창업자의 죽음 이후 가게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음 – 같은 해 제임스의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아, 코크 스트릿에서 60년대 초반부터 20년 동안 사용된 이름을 없애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음) “헨리 풀 수트를 입었을 때 바지 단추는 정확하게 배꼽 부분에 위치하게 됩니다.”라고 컨디가 이어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확한 허리의 위치죠. 현재의 패션은 약간 허리 위로 올라가는 추세이고, 80년대에는 1인치 정도 낮게 가는 편이었는데요, 고객이 완벽한 균형을 원한다면 전통적인 위치는 고객이 단추를 달고 싶어 하는 곳이 되는 셈이죠.”

오래된 규칙에 대한 완고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헨리 풀에는 고유의 특징이 있습니다. “저희는 고지 라인이라는 것을 넣습니다. 톱 칼라가 라펠을 만나는 곳을 올려주면서 착용자 쪽으로 올라가는 느낌을 주죠.”라고 컨디는 말합니다. “저희의 소매의 머리 부분에는 약간 솟아오른 부분이 있는데, 모양새가 측면으로 나오는 형태가 되어, 착용자는 좀 더 보기 좋은 가슴선을 가지게 되고, 불룩 튀어나오게 하지 않고도 주머니에 지갑이나 여러가지 것들을 집어넣을 수 있게 해주죠. 최근에는 더 날씬하고 짧은 바지가 인기를 얻고 있구요.”

“나폴레옹 3세,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왕, 디스라엘리 총리,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에드워드 7세는 모두 모두 새빌 로에서 가장 오래된 수트 숍인 이 곳의 고객이었습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헨리 풀은 “비스포크”라는 단어가 주는 의무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수트에 티켓 포켓, 사이드 벤트, 또는 비스듬한 크로스 플랩을 넣을 수도, 뺄 수도 있습니다.” 라고 가게의 5명의 선임 재단사 중 한 명이자, 마이 페어 레이디의 렉스 해리슨(Rex Harriso)과 마담 투소에 있는 히로히토 황제의 수트를 재단한 능력자로, 이 숍의 부회장인 필립 파커(Phillip Parker)가 얘기합니다. “센터 벤트가 사이드 벤트보다 나을까요? 소매 끝을 말아 올리는 것은요? 저희도 할 겁니다. 저희는 전 세계를 돌며 다양한 국가를 상대하며, 사람들 마다 원하는 방식이 있죠. 저에게는 아래 층에 작업 중인 옷이 두 벌 있는데, 심하게 표현하면 해체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변하지 않죠.”

1980년경 헨리 풀에 합류한 파커는 컨듀잇 스트릿에 있는 설리번 울리(Sullivan, Woolley & Co)사에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며 전후 폴란드, 체코에서부터 사이프러스, 서인도, 이탈리아, 러시아 재단사들이 유입되며 패션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숙련된 재단사들의 나이대가 낮아진 것입니다. “한때 새빌 로에 근무하는 인력들의 평균나이대는 60대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40대 혹은 그보다 낮아지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헨리 풀의 교육프로그램은 지난 10년간 코트 메이커, 바지 메이커, 재단사들에게 62개의교육과정을 진행했고, 덕분에 새빌 로가 젊은 인력들로 활력을 찾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지난 수십년 간 영국 패션업계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파커와 헨리 풀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질 좋은 소재가 4,000개 이상으로 늘었다는 점입니다. “메리노 울은 재단사가 원하는 모든 속성을 갖고 있는데, 통기성도 좋고, 아주 높은 수준에 맞춰 재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메리노 울을 수축시키고 밀치는 등 온갖 작업을 합니다. 제가 처음 업계에 들어왔을 때 울 소재의 평균 무게는 14온스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50, 160, 또는 200온스 대에 이른다. 거의 종이무게밖에 안 되죠.”

“메리노 울은 재단사가 원하는 모든 속성을 갖고 있는데, 통기성도 좋고, 아주 높은 수준에 맞춰 재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메리노 울을 수축시키고 밀치는 등 온갖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헨리 풀의 가장 유명한 특징은 속성이 다른 소재들을 함께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컨디에 의하면, 헨리 풀이 턱시도를 처음 만들었던 일화에 관해 2~3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그 중에서도 그는 1865년도에 에드워드 7세가 풀에게 노포크의 샌드링엄 사유지에서 개최되는 만찬에서 입을만한 조금은 격식이 덜한 옷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한 일이 그 시초라고 믿고 있습니다. 풀은 연미복의 꼬리를 자르고 어두운 블루 실크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이후에 미드나잇 블루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짧은 코트 또는 라운지 자켓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 후, 그의 친구 제임스 포터(James Potter)가 미국에서 돌아왔고, 그 옷에 감탄하여 한 벌을 주문한 후 뉴욕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턱시도 파크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 있던 그의 친구들은 모두 “대체 만찬에 무슨 옷을 입고 있는 거냐?”고 물었고, 그는 “이것이 바로 런던에 사는 왕이 입는 옷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영국으로 가서 같은 옷을 주문한 것입니다. 

남성 정장의 전통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헨리 풀의 유명한 디너 만찬과 관련한 일화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빌 로에서 가장 오래된 수트 숍의 성공은 2세기에 걸친 비스포크 재단의 전통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엮여 있는 기록들은 의류 역사가의 호기심 이상의 것들입니다 – 이 번화가의 풍부한 유산에 대한 확실한 증언입니다.

 Henry Poole & Co, 15 Savile Row, London, W1S 3PJ

스콧(Nick Scott): 리포트 (Robb Report)영국판의 에디터이며, 레이크 (The Rake)의 전 편집장, 지큐(GQ) 오스트레일리아의 부편집장이다. 그는 런던에 살며 에스콰이어(Esquire), 가디언(The Guardian), 파이낸셜타임스(The Financial Times )에 특집 기사를 실기도 했다.